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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내 이야기

충성을 왜 하느냐, 90년대생 이야기

 

 오늘자 다음 뉴스 문화부분 기사 내용에 따르면

충성을 왜 하느냐 90년대생 이야기 라는 제목의 내용이 보도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90년생으로 살아가는 일반인으로써,

90년생 또는 90년대생 이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관심을 갖고 보게 됩니다. 

 

그럼 기사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출처: 다음 문화 뉴스

기업에서 브랜드매니저로 마케팅업무를 하는 저자가 90년대생을 분석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비율의 심상치 않은 수치를 보고나서라는데. 청년 취업준비생 65만여명 중 40%25만여명(2016년 기준), 특히 9급 공무원은 2011142732명에서 2017년 역대 최대인 228368명으로 59.9%가 늘어난 거다. 과연 이들 중 얼마나 공무원이 됐을까. 대략 5000명 안팎. 1.8%쯤 된다니 100명 중 2명이 못 된다. 나머지 98명은 다른 길을 갔을까. 아니다. 내년 시험을 준비한단다.

왜 이들은 공무원이 못 돼 안달인 건가. 국가발전의 밑거름이 되자고 작정한 건가. 저자가 만난 청년들은 하나같이 “굵진 않지만 길게 갈 수 있는 길”로 입을 모은다. 노동자의 46%가 비정규직인 한국의 기형적 고용구조에서 ‘공무원이 최선’이란 결론을 낸 거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출발했다. 이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며, 이전 세대와는 얼마나 다르고, 이들과는 어떻게 함께 살 건가. 물론 핵심은 따로 있다. 중요한 건 공무원이 아니니까. 그들의 세대적인 특징이니까.

90년대생의 직장생활부터 들여다보자. 그들을 평가하는 인생 선배들의 ‘이구동성’에는 망설임이 없다. “배려는 무슨. 자기 것만 칼처럼 챙긴다.” “실수를 인정하는 꼴을 못 봤다. 변명만 한보따리다.” “끈기가 없으니 포기도 빠르지.” “공사 구분? 모바일만 들여다보는데 공적 업무인지 사적 업무인지 알 수가 있나.

비난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특징을 포착한 좀 더 구체적인 평가도 있다. “솔직하다. 조직구성원으로든 소비자로든 호구 되기를 거부한다. 회사와 제품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신문이든 책이든 종이는 아예 안 본다. 긴 것도 거부한다. 온라인이라고 해도 제목과 세 줄 요약이 전부, 나머진 댓글만 보고 끝낸다.” “맥락이 없으니 기승전결의 완결성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들을 꼭 닮은 B급 감성·콘텐츠에는 열광하면서.

또 시장에선 어떨까. 한마디로 ‘호갱이 되느니 안 사고 만다’는 주의다. 그들이 가려내는 건 부당함과 비합리성. 갑질이나 불공정거래가 보이면, 복잡한 프로세스로 불편을 만들면, 재미가 없고 고리타분하면 미련 없이 떠난다.

△‘꼰대’ 벗겨내야 그들과 공존할 수 있어

대안이 있기는 한가.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 말이다. 저자는 그 답을 ‘꼰대’에서 찾았다. 90년대생과 섞이는 어려움이면서 해결책인 그것. “도대체 얘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가 꼰대의 시작이란 거다. 흔히들 말하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부터 잘못됐단다. 차라리 버텨야 하는 기한을 일러주는 게 현명한 처사란다. “재미는 집에서 찾고, 회사에선 일!”이란 상사의 잔소리도 90년대생을 싫증 나게 한다고 했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 나의 성장’이란 공식을 들이댈 필요도 없단다.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반문에 말문이 턱 막히게 될 테니까. 그들의 충성 대상 1순위는 ‘자기 자신과 미래’라니, 방점은 달리 찍혀야 한단다. ‘너희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로.

저자가 내다본 ‘우리의 미래’는 90년대생과의 조화에 뒀다. 순수한 초보인지 어설픈 고수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면 관찰이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그들의 성향·감성에 맞는 제품·서비스를 끌어내는 데 기업의 성패가 달렸고, 그들의 방식·특성을 이해하는 데 사회의 생존이 달렸다고 했다.

사실 책이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저자는 그 유명한 ‘82년생’. 이제 서른여섯 살인 그가 90년대생의 출현을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여전히 90년대생이 걱정인가. 천만에. 80년대·70년대·60년대생이 더 걱정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90년대생에 관한 고찰로 보여지는데요.

어찌보면 90년대생을 개인주의자로 확정지으며, 부당함을 싫어하는 존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90년대생과 공존하는 방법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치 90년대생들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부당함은 못견디며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여지는 듯한 내용으로 느껴집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글을 적습니다.

90년대생을

개인주의자 , 이기주의라 라는 표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같습니다.

90년생들은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 IMF를 맞이했고,

빈부 격차를 몸소 겪으며 성장해 왔습니다.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이 발달했고,

접하는 정보의 양도 방대해 져서 두뇌 또한 활발하게 활동했죠. 

더불어서 사교육비의 증대, 취업난, 치솟는 아파트 값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세대가 바로 90년대생 입니다.

 

현재는 취업의 불안과 결혼 자금에 대한 고민으로 결혼을 포기하는 일명 ..도 많은 상황입니다.

제가 90년생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이 기사의 필자가 90년대생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우리는 이기적이다 불공정함은 견딜 수 없다가 아닌

정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이가 많습니다.

사회에서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가 90년대생일 수 있으나,

꼭 집어서 90년대생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 중 예의 바르고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이도 적지 않기에

이렇게 타겟층을 두고 겨냥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IMF, 월드컵 4강신화,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등

90년대생들은 격변에 시기에 성장하며

사회와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장점도 많습니다.

기자는 마우스를 물고 태어난 시대라고 책보다는 마우스가 편한 세대로 비유해 주셨는데요,

맞습니다. 마우스를 물기보단 잡는 것이 매우 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마우스만 잡는 것에 떠나서

글도 읽고 글도 쓸 줄 아는 사람도 많다라는 점도 꼭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90년대생 모두 파이팅 입니다.

-18.12.05

내 이야기 끝.